[주일예배] 2023년 7월 23일 성도의 희망노래(3) "죄사함의 축복"

희망교회
2023-07-30
설교한 날
2023/07/23 일
성경 본문
시편 32:1~5
설교
조기현 목사

<성도가 부르는 희망노래> 세번째는 죄사함의 축복입니다.

예전 프리웨이를 운전하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차가 따라붙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핸드폰을 손에 들고 귀에다 갖다대고 음악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김없이 운전중 핸드폰사용으로 티켓을 먹었고 금액이 지금 기억하기로는 200불이 조금 안되었던 거 같습니다. 빠뜻한 살림에 돈이 너무 아까웠고 핸드폰을 정말 잠깐 귀에다 대고 있었던 뿐이라는 생각에 억울한 마음이 컸습니다. 벌금딱지를 받고 오는 길에 예전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벌금을 안내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죠. 법정(코트)에 가서 무죄를 주장하면 다음 법정방문 일정이 정해지는데, 그때 티켓을 부여한 경찰관이 나오지 않으면 벌금이 면제된다는 얘기였습니다. 요지는 내가 무죄를 주장하면, 이제 유죄를 입증하는 몫이 경찰관에게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번 그대로 해보기로 하고, 법정에 갔습니다. 많은 대기자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데, 안내하는 사람이 오더니 판사앞에 서면 “Guilty or Not Guilty” 둘 중 하나만 얘기하고 신속하게 지나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연습했습니다. 계속 연습했습니다. “Not Guilty, Not Guilty…” 법정안에 들어갔고, 사람들은 판사앞에서 자기 차례가 되니 “Not Guilty”라고 자기 무죄를 주장하고 지나갔습니다. 서서히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내 한마디에 우리집 살림에 200불이 나가느냐 안나가느냐가 달려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판사앞에 섰는데, 어느새 내 입에서는 “Guilty”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말한 것이죠. 머릿속에서는 “Not Guilty”인데 입에서는 “Guilty”라고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왜 아침부터 굳이 법정으로 달려와 내 잘못을 다시한번 인정했을까요! 저는 일단 판사앞에 서니 그 권위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운전하면서 아주 잠깐이었지만 핸드폰을 손에들고 쓴거는 어김없는 사실임을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기서 제가 깨달은 교훈이 뭘까요? 운전할때는 항상 블루투스를 써라, 블루투스 안되는 차는 이제 바꿔야 할 때다? 아닙니다. 다시한번 깨달은 것은 누구나 한사람도 예외없이 하나님앞에 설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때를 피할사람은 켤코 한사람도 없습니다. 교통법규를 위반하고 “Not Guilty”라고 하며 우길수는 있지만, 하나님앞에서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때 무죄를 주장할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그것들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너는 의롭다, 너는 깨끗하다.”라고 말씀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그 대속의 은혜를 믿는자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입니다. 그렇기에 성도가 늘 부를 수 있는 희망노래는 죄사함의 축복인 것입니다. “죄사함의 축복을 오늘 두가지로 나누길 원합니다.


첫째, 죄사함의 축복은 회개로만 얻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축복은 회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정에서 “Not Guilty”라고 말하고 나오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후련했습니다. 대기하면서 그리고 판사앞에 나가면서 내 안에 휘몰아치며 긴장했던 모든 것이 일순간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시인하면 됩니다. 인정하면 됩니다.
오늘 본문 시편 321~5절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가장 복된 자는 죄를 사함받은 사람입니다. 입을 열지 않을 때 종일 신음하는데 뼈가 쇠하기 까지 신음했고, 내 온몸에서 진액이 빠져나갈만큼 눌림 가운데 있었지만, 입을 열때에, 내가 내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아뢸때에 비로소 살아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한국에서 자라고 신앙생활 하신 분들은 수련회를 기억합니다. 일년에 두번, 여름수련회 겨울수련회를 합니다. 수련회 집회때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것입니다. 눈물 콧물 있는대로 다 쏟으며 기억나는죄, 기억나지 않는죄 하나님앞에 다 쏟아내는 것을 합니다. 저도 기억납니다. 엄마한테 소리지른거, 거짓말한거, 문제집 산다고 하고 돈빼돌린거 회개하는 것입니다. 수련회를 끝나고 내려올 때 친구들끼리 서로 보면서 참으로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서로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기 때문입니다. 남자애들 여자애들 다 웃음꽃이 핍니다. 집에 오면 엄마도 놀랩니다. 아 우리 아들이 은혜 많이 받았구나!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도 끌어안아주고, 아침에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나 이불도 개고, 밥도 감사하게 먹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주도 되지않아 원상복귀됩니다. 그래서 최소한으로 일년에 두번은 수련회를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날마다 필요합니다.

우리 희망교회는 어떤가요? 주일마다 죄의 고백과 회복선포의 시간이 있습니다. 다음 성경구절을 가지고 회복선포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 앞에서 죄와 허물을 고백하고, 회복의 선포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면 사단이 이제 더 이상 내 죄와 허물을 약점으로 잡아 나를 정죄하거나 고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는 축복입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거에요. 눈물 흘리고 후회하고 뉘우치는게 아니라,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죄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보통 하마르티아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과녘을 향해 쏜 화살이 경로를 이탈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하는 존재가 하나님없이 살아보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존재 이유, 제자리를 상실했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죄는 근본적인 죄에 대한 현상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방향의 전환이 정확히 있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죄사함의 축복둘째, 죄인임을 고백할 때 천국을 맛봅니다.
우리 삶이 천국이 되느냐 지옥이 되느냐는 거창한 것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한끝차이고 백지한장차이입니다. 그래서 내 삶에서 당장에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길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 또한 감사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 천국이 임합니다. 이것는 회개하고 약간 다른 관점인데, 특별히 인간관계속에서 나의 죄인됨을 아는 사람은 천국을 맛봅니다. 내가 소망없는 사람이고,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천국을 맛보지만, 반대로 나는 언제나 옳고 고쳐야할 사람은 상대방이고,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정죄하고 지적하며 살아간다면 그 삶은 바로 지옥이 됩니다.


아는 목사님 부부가 휴가를 맞이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꽤 먼거리였지만 비행기값을 아끼려 운전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운전해서 갈길이 멀었지만 휴가이니 들뜬마음, 즐거운 마음 뿐이었고 대화를 나누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차가 따라왔습니다. 과속으로 스피딩 티켓을 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행기를 안타고 돈을 아끼겠다는 마음으로 운전해 가는데 300불 넘는 벌금을 물게 되었으니, 그 즐거웠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얼음장처럼 차갑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런 상황에서는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죄인이죠. 사모님은 남편 목사님이 못마땅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들떠도 그렇지 운전을 그렇게 들뜨게 하면 어떡해!” 대화가 없어진 싸늘한 공기, 그런데 그 싸늘한 공기에 은혜로 채워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요? 참다못한 목사님은 사모님에게 운전대를 넘겼었는데, 좀 가다가 사모님도 스피딩 티켓을 먹었다는 것이죠. 경찰관한테 우리가 좀 전에 과속티켓을 먹었으니 이번엔 좀 봐달라고 얘기했지만, 경찰의 말이 아주 한수 위였다고 합니다, “불과 한시간 전에 티켓먹었는데 어떻게 그새를 못참고 또 과속할수가 있냐!” 그러면서 보란듯이 또 티켓을 끊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순간 그 냉냉했던 분위기가 다시 은혜로운 분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차가운 분위기를 은혜의 분위기로 바뀌는 유일한 길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너만 그런게 아니라 나도 똑같은 죄인이다"라는 것이죠. 천국이 임하는 길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도 똑같은 죄인이다, 나도 여전히 은혜가 필요한 존재다이렇게 고백할 때만 가능하다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한끝차이, 내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으면 그 능력이 많으신 전능하신 하나님도 하실수 있는게 없습니다. 반대로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2:17b)“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인간의 고백가운데 가장 위대한 고백은나는 죄인입니다.”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백을 가장 위대하게 사용하십니다.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하나님앞에 쓰임받은 모든 사람의 시작은 동일하다. “내가 죄인임을고백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딤전1: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절대진리입니다. 기독교는 전적으로 타력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니가올래 내가갈까? 니가 올 수 없으니 내가 간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종교라는 다른 모든 이름의 신앙을 들여다보면 자력구원을 말합니다. 소위 그들이 말하는 구원의 경지, 신적존재를 만나는 그 지점까지, 열심히 오라는것입니다. 기어서 오든, 절을 하며 오든, 율법을 지켜서 자기의를 쌓아서 오든, 온갖 제물을 잡아서 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든, 니가 스스로 열심히 성심을 다해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스스로 올 수 없는 존재이니 내가 간다, 믿기만 해라.”

(3:16)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에서는 무고한 사람을 위해, 정의로운 일이라 여기는 것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단코 살인자를 위해, 마약중독자를 위해 대신 죽어주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철저히 교만하고 불순종하는 죄인을 위해 친히 죽으러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죄인임을 고백하며 진정한 회개를 통해 죄사함의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날마다 경험되어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